부처님의 세계는 형언할 길이 없다. 무한하다, 장엄하다는 말로도
그 크기를 표현할 수 없고 신묘하다, 불가사의하다는 말로도
그 참 맛을 전할 수 없다. 부처님은 일체와 더불어 계시면서
일체를 초월해 계신다. 또 수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는
부처님의 공덕은 삼계를 덮고, 삼계를 싣고, 삼계를 꿰뚫고,
삼계에 나투신다.
2 .
부처님은 자재하시고 무량하시다. 일체 만물에 응하시고
일체 만물을 제도하신다. 부처님은 지옥에도 계시고 극락에도 계신다.
삼계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. 깨끗한 곳에만 계신 게 아니라
질척하고 더러운 곳, 똥통 안에도 계신다.
왜냐? 구더기를 건지려면 구더기가 되어야 하고
짐승을 건지려면 짐승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.
3 .
우리들의 마음에 따라 부처님은 항상 나투신다.
사람에게만 나투시는 게 아니라 짐승들, 일체 만물 만생에 나투신다.
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따르고 온갖 것에 다 응해 주시면서도
결국은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제도하신다.
삼계의 어느 구석 한 군데라도 비워두시지 않는다.
그러기에 삼십이상이 구족했다 하고
삼십이응신이 구족했다고 하는 것이다.
내고 들이는 데 조금도 걸림이 없기에 구족했다고 한다.
아니 디디시는 곳이 없기에 평편족이라 한다.
부처님의 손이 닿지 않는 데가 없고, 팔이 닿지 않는 데가
없다는 것은 진실이다. 우주의 어느 혹성과 어느 은하계라 할지라도
그 구석구석 어느 틈이건 평등하게 나투어져 있다.
어느 곳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다 안다.
뿐만 아니라 어느 생명의 차원과 어떤 혹성의 발전된 단계와
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훤히 알고 있고, 또 발전시켜 줄 수도 있고
낮춰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능력을
저곳에다 심어 줄 수도 있는가 하면 저곳의 능력을 이곳에
맞춰 줄 수도 있는 것이다.
이처럼 부처님이 중생의 마음에 자유 자재로 들락날락해도 중생들은
모른다. 제 주장자가 있어야 주장자를 얻을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다.
5 .
부처님의 자비는 모든 생명에 대한 크고도 넓은 자비이다.
고로 대자대비라 한다. 또 그 대자대비는 중생과 근본으로부터
한 몸이 되신 것이기에 동체 대비라 한다.
6 .
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바르고 고통 없는 경계에
들어가게 하는 것이다.
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려내고 우려내어도 끝없이 진한 국물이 나오는
뼈다귀라 할 수 있다.
일체 중생이 배불리 먹고 나서도 부족함이 없다.
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인가.
부처님의 세계만이 영원하다.
부처님의 법은 결코 효력이 상실되는 법이 없다.
부처님은 영원한 생명이며 한량없는 빛이며
모든 것의 본질이기도 하다.
8 .
부처님께서는 마음 발견하는 것을 전하려 몸을 나투셨다.
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여 중생 앞에 두루 안 가는 곳이 없지만
그러는 중에도 진리를 가르치고자 몸을 나투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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